기독교 시오니즘 폭로 이미지에 인용된 성경 구절:
(벧전 2:6) 그런즉 성경 기록에도, 보라, 내가 선택한 보배로운 으뜸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당황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말씀이 들어 있느니라.
(벧전 2:7) 그러므로 그분께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로우시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건축자들이 거부한 그 돌이 되셨느니라. 바로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벧전 2:8) 걸림돌과 실족하게 하는 반석이 되되 순종하지 아니하여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에게 그리되었나니 그들은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하여졌느니라.
(행 4:11) 이분은 너희 건축자들이 업신여긴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느니라.
브라에언 쉴해비, 2023.11.27
(롬 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을 상실한 것 같지 아니하니 이는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기독교 시온주의는 컬트이며, 매우 위험한 컬트입니다.
저는 기독교 시온주의 가르침이 그들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성경의 실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컬트’라고 말합니다.
기독교 시온주의(Christian Zionism)는 18세기경 시작되어 19세기 후반 존 넬슨 달비(John Nelson Darby)와 C.I. 스코필드(C.I. Scofield)가 시오니즘을 포함한 세대주의 렌즈를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최초로 성경 원문에 대한 주석을 포함한 ‘스터디 바이블[스코필드 관주성경]’을 개발하여 대중화된 신학의 한 분야입니다.
1970년대 후반, 버지니아 리버티 대학교의 설립자인 제리 팔웰 박사는 공화당이 채택한 시오니스트 “도덕적 다수”의 설립으로 시온주의를 미국 정치에 끌어들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버지니아는 6,000마일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리 팔웰 박사는 이스라엘 사람들 돌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에드 하인슨(Ed Hindson) 박사에 따르면,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로 선언된 직후, 팔웰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팔웰이 신학교를 나와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를 설립하면서, 그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집으로 데려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이스라엘 중심의 적그리스도 세계정부를 꿈꾸는 시오니스트들이 성경 말씀의 성취로 믿게 하려고 일으킨 위조 알리야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하려고 유대인 밀집 나라들과 지역들에 반유대주의 자작극들을 조장해왔습니다. 독일의 나치를 이용해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한 배후 세력도 그들입니다. 권력을 쥔 그들의 알리야 정책(정치적 책략)에 가장 미혹되어 있는 대상이 이 땅의 유대인 유토피아(거짓 천년왕국)를 꿈꾸는 유대인들과 그 유대인들을 숭배하고 지지하는 시온주의 기독교인들입니다.]
팔웰은 생전에 이스라엘을 15번 정도 방문했습니다.
웨스트오버 공작은 35년 동안 팔웰의 비서실장으로 일했고, 한 번의 여행을 제외하고 매번 그와 함께 이스라엘을 여행했습니다. 그의 일은 이스라엘 국가 관리들과의 회의와 인터뷰를 계획하는 것이었습니다.
웨스토버는 “제리는 이스라엘 총리와 모든 대사들로부터 두 팔 벌린 환영을 받았다”며 “그들은 무엇보다 제리를 친구로 인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공동 설립자인 엘머 타운스 박사는 팔웰이 리버티 대학 1학년 때 자신에게 접근해 154명의 학생 단체 모두를 이스라엘에 무료로 데려가고 싶다고 선언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1972년 2월에 이스라엘을 방문했습니다. 타운스는 단지 90명의 학생들만 방문했고, 각 장소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 겟세마네 정원과 다른 장소들을 방문했습니다.
타운스는 “우리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 ‘당신이 하나님을 섬길 때 예수님과 함께 걸어갈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걸었던 곳으로 가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년 후인 1999년 1월, 팔웰과 웨스트오버는 이스라엘을 한번에 방문한 가장 큰 그룹인 1,5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갔는데 그 그룹 중 900명이 리버티 학생들이었습니다.
1979년, 팔웰과 다른 목사들은 이스라엘, 요르단 그리고 이집트에 평화 계획을 제안하기 위해 국가 종교 방송국에 의해 초대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요르단의 후세인 빈 탈랄 왕, 그리고 이스라엘의 메나켐 베긴 총리를 만났습니다.
하인슨은 사다트가 팔웰과 다른 목사들을 대통령 전용기인 이집트 항공편으로 요르단으로 데려갔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텔레비전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며 그들과 만나고 싶어했습니다.1980년, 베긴은 팔웰에게 “이스라엘의 대의”[이스라엘 중심의 신세계질서 세계지배=시온주의]에 뛰어난 방법으로 공헌한 미국인들에게 주어지는 이스라엘 정부 상인 자보틴스키 상을 수여했습니다. 하인슨은 이 상이 총리가 이스라엘의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는 그를 알아본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났고,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 다가왔습니다”라고 하인슨은 팔웰과 함께 여행했던 두 번의 시간을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에 있을 때 항상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영웅의 환영이었습니다. 그는 영향력을 미쳤고,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복음을 위한 영향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웨스토버는 팔웰이 이스라엘의 미국 대변인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팔웰이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 일어선 것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웨스토버는 “미국에서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하면 제리는 항상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우파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출처)
고 제리 팔웰[프리메이슨] 외에도 1970년대 후반부터 정치에 참여하고 이스라엘을 자주 방문한 다른 시온주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큰 기독교 시온주의 단체인 ‘이스라엘을 위한 크리스찬 연합’을 설립한 메가 처치 텍사스 목사 존 해기(John Hagee)[프리메이슨]와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도달하는 기독교 방송 네트워크(CBN)와 700 클럽의 설립자인 고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프리메이슨]입니다.
시온주의에서 나오는 가장 위험한 신념은 현대 이스라엘, 그리고 ‘유대인들’이 지상의 어떤 민족들이나 인종들보다도 특별하다고 믿는 것으로, 이로 인해 인종 차별과 편견이 발생한다는 것인데, 이는 성경에서 전혀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이전에 이 잘못된 가르침의 상당 부분을 다루었으므로, 이 글에서 제가 하려는 일은 그 가르침의 대부분을 반복하면서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시오니스트들 대부분이 주장할 때 사용하는 성경을 저의 권위로 삼고 인용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독교 ‘전문가’에 의존하기보다는 여러분 스스로 직접 성경을 검색하여 이 주제에 대해 그들이 실제로 가르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들은 복받는다” – 거짓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들은 복받는다”는 문구는 성경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시온주의자들이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지지해야 할 근거로 주장하는 성경 구절들 중 하나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들은 복받는다”는 문구입니다.
그러나 이 진술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장 자주 이용되는 성경 구절은 창세기 12장에 있습니다:
(창 12:1) 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2)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니 네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더라.
이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 약속의 때로부터 100여 년이 지나서야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과 함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창 32:27) 그가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거늘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하매
(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라 하리니 이는 네가 통치자로서 [하나님]과 견주며 사람들과 견줄 능력이 있어 이겼기 때문이니라, 하니라.
‘이스라엘’로 개명된 야곱에게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된 열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니”라는 구절은 지정학적 국가가 아니라, 한 사람인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한 사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약속이 단순히 민족성을 기준으로, 또는 미래에 이스라엘 땅을 [불법으로] 점령할 모든 유대인들에게 한 것이었을까요?
아니요!
적어도 여러분이 시온주의 렌즈를 통해 성경을 읽으면서 여러분의 시온주의 관점과 모순되는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성경을 읽고 거기에 적힌 것을 근거로 여러분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면 그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그렇다고 제 말만 믿지 말고 여러분이 성경을 직접 읽고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대해 바울이 쓴 것을 읽어보십시오:
(갈 3:16)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
바울이 여기서 쓰고 있는 진리는 창세기 22장에서 따온 것으로,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반복된 것입니다:
(창 22:18) 또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니라, 하니라.
‘씨’이라는 단어는 영어 단어 ‘오프스프링(자손)’을 대신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썼듯이, 그 약속은 오직 아브라함의 후손 한 명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오늘날 “축복”을 받거나 “저주”를 받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축복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누구입니까?
사바티안 “유대인들”: 사바타이 제비와 카발라 생명의 나무
“유대인(Jew)”이라는 용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넓은 맥락에서, “유대인”은 적어도 세 가지 널리 알려진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유대인 “종교”를 포용하는 종교 집단, 특정 계보에 관련된 민족 집단, 또는 지정학적 국가인 이스라엘과 연관된 집단.
“유대인(Jew)”으로 식별되는 사람은 이 세 그룹 모두, 또는 그것들 중 하나에 속한 것으로 식별할 수 있거나, 또는 그것들 중 어느 그룹과도 연관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온주의는 여러분이 “유대인”이라는 이름이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을 모두 물려받을 아브라함의 육체적 혈통의 후손인 민족이라는 단 한 가지 의미만 있다고 믿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어떤 방식으로든 ‘유대인(Jew)’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반유대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됩니다.
‘반유대주의(Antisemitism)’라는 말 자체가 시온주의 컬트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침묵시키려 할 때 쓰는 거짓 딱지입니다. ‘셈족(semite)’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들 야곱(이스라엘) 혈통을 통해 태어난 사람들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 모두를 포함합니다.
사실, 그 용어 자체가 노아의 아들들 중 한 명인 셈에게서 유래되었습니다. 그 말에는 아브라함의 조상들 가운데서 셈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부장적인 계통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에는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들의 후손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인데, 그들 중 대부분이 오늘날 이슬람교도들인 아랍인들의 조상 이스마엘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혈통이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땅에 대한 성경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이러한 시온주의자들의 믿음과 어떻게 완전히 모순되는지를 보여드리기 전에, 먼저 오늘날 이스라엘에 실제로 어떤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과연 그들이 정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 민족일까요?
아니요,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가 없습니다. 인종적으로 오늘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이들 ‘유대인들’ 중 많은 이들은 원래 몽골에서 온 후손인 현대 투르크족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러시아의 체첸인, 중국의 위구르인 등 다른 나라들뿐만 아니라 현대의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원래 종교에 의한 “유대인들”이고, 그들의 가족의 과거를 셈족 히브리인(“유대인”이 아닙니다)인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종족 유대인이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많은 조상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 이스라엘에 살던 대부분의 종족 유대인들은 서기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해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면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기독교인들이며, 모하메드 치하에서 이슬람이 시작된 지 600년이 지난 후, 오스만(터키) 제국 하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유대인들”에 대해 무어라고 가르칩니까?
누가 ‘유대인’이고 아브라함의 자녀인지 성경에서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 중 하나는 1세기에 바울이 갈라디아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는 그 당시 로마제국의 한 속주였고, 오늘날 튀르키예 중부에 해당합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 소식”(복음)을 전하며 이 지역을 여행했고, 그 결과 몇몇 도시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모임이 형성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이 사람들은 “그리스인들[헬라인들]” 또는 “이방인들”로 여겨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었고,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체적인 족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에 모인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배경은 1세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유대인들과 비유대인들 사이에 발생한 논쟁이었습니다.
논란은 다마스쿠스 바로 북쪽에 있는 안디옥에서 시작되었고, 갈라디아에도 확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논란은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성경의 구약성경 첫 5권에 기록된 십계명과 모세에게 전해진 다른 모든 율법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 신자들이 기본적으로 모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유대교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유대인 신자들” (오늘날 시온주의자들의 전신)은 “이방인 신자들”이 할례 받는 것을 포함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에서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낸 대부분의 원래 사도들이 살고 있던 예루살렘에서 일어났으며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임의 핵심 인물은 예수님의 동생(마리아가 성령의 역사로 동정녀의 몸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잉태되어 나신 후, 남편 요셉과의 사이에 낳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 바울도 그 자리에 있었고, 이방인 신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 모임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모세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으며, 특히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데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받고 종교적 유대인 개종자가 되라고 계속 주장했고, 그들 중 일부는 갈라디아로 들어가 큰 논란을 일으켰으므로, 바울이 그 곳에서 만난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자신이 민족적 유대인이면서 바리새파의 종교적 유대인이기도 하지만 로마 시민이기도 한 바울은 이 유대인들과 그들을 따르기 시작한 지역 신자들에 대한 비판에 분노를 참지 않았습니다.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 1:7) 그것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자들이 더러 있도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10)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
아브라함의 “씨”
그래서 갈라디아의 신자들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유대인들과 비유대인들 사이의 이 논쟁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데, 우리는 이 편지가 성경에 포함된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자신의 ‘사도’로서의 자격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의 직접 계시를 통해 ‘좋은 소식’을 받은 경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과 2장을 읽어보십시오)
갈라디아서 3장에서 그는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들”인지 분명히 정의하고 있습니다:
(갈 3:6) 이것은 곧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갈 3:7) 그런즉 너희는 믿음에 속한 자들 곧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줄 알지어다.
(갈 3:8) 또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 이교도들을 의롭게 하려 하심을 성경 기록이 미리 보고 아브라함에게 미리 복음을 선포하여 이르되, 네 안에서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갈 3:9)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에 속한 자들은 믿음이 충만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바울은 모세가 쓴 다섯 권의 책들 중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 쓰인 구절을 여기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고”라는 첫 번째 인용구는 창세기 15장 6절에서 나옵니다.
(창 15:1) 이 일들 뒤에 {주}의 말씀이 환상 속에서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하시니
(창 15:2) 아브람이 이르되, [주] {하나님}이여, 무엇을 내게 주려고 하시나이까? 나는 아이가 없이 지내오며 내 집의 청지기는 다마스쿠스에서 온 이 엘리에셀이니이다, 하고
(창 15:3) 또 아브람이 이르되, 보소서,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은즉, 보소서, 내 집에서 태어난 자가 내 상속자이니이다, 하매
(창 15:4) 보라,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요, 오직 네 배 속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더라.
(창 15:5) 그분께서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아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거든 세어 보라, 하시며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 하시니라.
(창 15:6)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고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에서 말한 “네 안에서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라“라는 두 번째 구절은 창세기 12장에서 따온 것입니다:
(창 12:1) 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2)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니 네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더라.
창세기는 히브리어로 쓰였지만 바울의 편지는 그리스어로 쓰였고 갈라디아서 3장 8절에서 대부분의 영어 번역이 ‘민족’으로 번역하는 창세기 12장 3절을 인용할 때 사용한 단어는 그리스어로 ethnos입니다.
오늘날 “민족들(Nations)”은 대부분 현대 영어로 지정학적인 “민족들(Nations)”를 의미하지만, 그리스어의 “ethnos”는 훨씬 더 넓은 의미의 “인종” 또는 “민족 그룹”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민족(ethnic)”과 “민족성(ethnicity)”과 같은 영어 단어는 이 그리스 단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복이 아브라함의 민족성이 아니라 창세기 15장 6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믿음에 근거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혈통적 족보가 없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민족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어 갈라디안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좋은 소식’과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근거한 것이며, 430년 뒤에 온 모세 율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갈 3:10)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기 위하여 항상 그것들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는 모든 자는 저주받은 자니라, 하였느니라.
(갈 3:11) 그러나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느니라.
(갈 3:12) 또 율법은 믿음에서 나지 아니하나니 오직,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리는 모든 자는 저주 받았느니라, 하였느니라.
(갈 3:14) 이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 위에 임하게 하고 또 우리가 믿음을 통해 성령을 약속으로 받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고 이제 우리는 바울이 쓴 갈라디아서 3장의 다음 섹션에서 문제의 핵심에 이릅니다.
이것은 1세기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의 논쟁의 핵심이었고, 특히 아브라함을 그들의 조상으로 여기는 세 종교들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논쟁의 핵심입니다.
이 논란의 핵심은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갈 3:15) 형제들아, 내가 사람들의 관례대로 말하노니 그것이 단지 사람의 언약이라도 일단 확정되면 아무도 취소하거나 거기에 더하지 못하느니라.
(갈 3:16)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
(갈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확정하신 그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취소하지 못하며 또 그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 못하리라.
(갈 3:18) 만일 그 상속 유업이 율법에서 나면 그것은 더 이상 약속에서 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통해 주셨느니라.
(갈 3:19) 그러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그것은 약속을 받은 그 씨가 오실 때까지 범법들로 인해 더해진 것이요, 한 중재자의 손에서 천사들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
(갈 3:20) 이제 중재자는 하나만의 중재자가 아니로되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갈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에 위배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생명을 줄 수 있는 율법이 주어졌더라면 진실로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있었으리라.
(갈 3:22) 그러나 성경 기록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주려 하심이라.
(갈 3:23) 그러나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붙잡혀서 나중에 계시될 믿음에 이르기까지 갇혀 있었느니라.
(갈 3:24)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
(갈 3: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에는 우리가 더 이상 훈육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갈 3:26)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이들이 되었나니
(갈 3:27) 너희 중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3:28)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니라.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에서, 그리고 로마 교인들과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처럼 다른 곳에서 너무나도 웅변적으로 설명하는 이 진리가 바로 GOOD NEWS(좋은 소식), 즉 “가스펠(복음)”인데, 이것은 아브라함이 가졌던 것과 같은 믿음을 가진 것에 기초하기 때문에 민족, 종교, 성별, 또는 인간을 분류하는 다른 방법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엡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엡 2:5)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엡 2:7) 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긴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
(엡 2: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진정으로 중요한 아브라함의 유일한 육체적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령의 역사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한 제물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어린양으로 처형되셨고, 장사된지 3일 후에 사탄과 죽음을 물리치고 승리하시며 무덤에서 걸어 나오셨습니다.
자, 여기서 “씨”라는 영어 단어는 바울이 사용했던 그리스 원어로 정자입니다.
식물로 자라기 위해 땅에 심는 문자 그대로의 씨앗을 의미할 수 있으며, 인간의 ‘씨’인 남성의 ‘정자’에도 사용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3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갈 3:28)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니라.
이것은 영적인 “씨”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종족 계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영적인 씨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영적 씨의 진실은 성경의 첫 번째 책의 가장 초기 페이지들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창세기 3장의 앞부분에 나옵니다.
(창 3:13) {주}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행한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니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속이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니라.
(창 3:14) {주} [하나님]께서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일을 행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평생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창 3: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그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저는 일부러 히브리어로 쓰인 이 구절을 번역할 때 영어 단어 “씨(seed)”를 사용한 영어 버전을 선택했습니다. 몇몇 번역들은 여기서 “자손(offspring)”이나 “후손(descedents)”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뱀의 ‘씨’는 뱀의 새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감염시킨 영적인 ‘씨’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다음 장에 나오는 가인과 그의 형제 아벨의 이야기에서 사탄의 이 영적인 “씨”가 가인에 들어가 그의 형제 아벨을 살해하는 것을 즉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전적으로 같은 부모인 아담과 이브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였기 때문에 신체적인 “씨”는 분명히 아닙니다.
이브의 육체적 씨는 그녀의 육체적 후손들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전해졌고, 그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해졌습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다윗 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를 가진 유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리고 분명히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분 시대의 지배층 유대인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겪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했던 이 지배층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체적 족보를 가지고 있었지만(추정),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으며, 예수님은 그들이 실제로 사탄의 자녀들이고 루시퍼적 글로벌리스트들에 의해 통제되는 세상 시스템의 일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다음과 같은 담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 8:31) 이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그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요 8:32)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시니라.
(요 8:33) ¶ 그들이 그분께 응답하되,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로서 결코 누구에게도 속박된 적이 없거늘 어찌 네가 이르기를, 너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하매
(요 8: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니라.
(요 8: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항상 거하나니
(요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롭게 되리라.
(요 8: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씨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너희가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요 8:38) 나는 내가 내 [아버지]와 함께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가 너희 아비와 함께 본 것을 행하느니라, 하시니라.
(요 8:39) 그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니라, 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의 행위를 하고자 할 것이로되
(요 8:40) [하나님]께 직접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이제 너희가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8: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하는 일들을 하는도다, 하시매 이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는 음행을 통해 나지 아니하였고 우리에게는 한 [아버지]가 계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거늘
(요 8: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나아왔기 때문이라. 나는 스스로 오지 아니하였으며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느니라.
(요 8:43) 너희가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로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자기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요 8:45)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 8:46) 너희 중에 누가 내게 죄를 깨닫게 하겠느냐? 또한 내가 진리를 말할진대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요 8:47)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그것들을 듣지 아니함은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그래서 서기 1세기 예수님 시대에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부르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이 글의 나머지 부분에서 제가 ‘사탄적 유대인들’이라고 부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과 “마귀”는 동의어이지만, 영어에는 ‘마귀’에 대한 공통된 형용사가 없습니다.”)
이 사탄적 유대인들은 지배층이었고, 그들은 서기 70년에 파괴되기 전에 이스라엘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를 지배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복음서 곳곳에서 그들과 여러 번 마주치시는 것을 봅니다. 그들의 은행가(환전업자)들을 성전 밖으로 쫓아내시는 것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요 2:13) ¶ 유대인들의 유월절이 가까이 오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사
(요 2: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는
(요 2:15) 가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 2:16)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이것들을 여기서 가져가고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사탄적 유대인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그들은 사탄의 욕망을 수행합니다.
- 그들은 살인자들입니다.
- 그들 속에는 진실이 없습니다.
- 사탄이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에 그들의 모국어는 거짓말입니다
-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들을 수 없고, 오직 그들의 아비인 사탄의 음성만을 신의 음성으로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자기들의 아비로 섬기는 사탄적 유대인들이 있고, 그분을 믿는 의로운 유대인들이 있다고 가르치셨으며, 후자를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자신이 유대인이고 셈족인 예수님은 2000년 전에도 이스라엘 민족을 지지하지 않으셨으며,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그 이유로 오늘날이라면 분명히 “반유대주의자”로 낙인 찍힐 것입니다.
여기에 ‘반유대주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대 유대 지도자들에 대해 하신 말씀이 더 있습니다.
(마 23:13) ¶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사람들에게 하늘의 왕국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아니하며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허락하지 아니하는도다.
(마 23:15)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개종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만들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29)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대언자들의 묘를 만들고 의로운 자들의 돌무덤을 수리하며
(마 23:30) 이르되, 우리가 만일 우리 조상들 시대에 있었더라면 그들이 대언자들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나니
(마 23:31) 그러므로 너희가 대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너희가 너희 자신에게 증언하는도다.
(마 23:32) 그런즉 너희가 너희 조상들의 분량을 채우라.
(마 23:33)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겠느냐?
그런데 그 유대인 지도자들 중 한 명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믿었고, 밤에 몰래 와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어떻게 이행되어야 하는지를 더 깊이 설명했습니다. 그 대화는 요한복음 3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영적 씨인 것에 근거하며, 아브라함의 영적 계보 안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born again)’고 명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요 3:1) 바리새인들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인들의 치리자더라.
(요 3:2) 바로 그가 밤에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기적들을 아무도 할 수 없나이다, 하매
(요 3: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요 3:4)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하매
(요 3:5)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
(요 3:8) 바람이 마음대로 불매 네가 그것의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 하시니라.
(요 3:9) 니고데모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어찌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나이까? 하매
(요 3: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1)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도다.
(요 3:12) 내가 땅의 것들을 너희에게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내가 하늘의 것들을 너희에게 말하면 어떻게 너희가 믿겠느냐?
(요 3:13)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3:14)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요 3:15)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3:16)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요 3:18) ¶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요 3:19)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20) 이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염려하여 빛을 미워하고 또 빛으로 나오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요 3:21)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자는 빛으로 나오나니 이것은 자기 행위와 또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이 단순히 민족성에 근거해서 구원을 받고 아브라함의 약속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시온주의자들은 민족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영적 거듭남에 근거해 누구나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좋은 소식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1세기에 살았던 이 시온주의자들에게 바울은 다음과 같이 꾸짖었습니다: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 1:7) 그것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자들이 더러 있도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10)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
“대체신학” 허수아비 논법에 대한 응답
오늘날의 시오니스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대화할 때 종종,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을 이어받은 ‘유대인’들은 민족성에 상관없이,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그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임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하면, 많은 시오니스트들이 “오, 당신은 대체신학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것은 거짓입니다.”라고 빠르게 대답할 것입니다.
달라스 신학교와 함께 미국 최고의 시오니즘 신학교들 중 하나이고 제가 졸업한 무디 성경연구소 출신의 전 학우들 중 한 명은 제가 성경의 이 구절을 인용해서 아브라함의 신체적 후손들이 단순히 민족성에 기초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 제가 ‘대체신학’을 설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대체신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했습니다.
‘대체신학’은 오늘날 ‘교회’가 이스라엘 민족을 대체했다는 잘못된 교리로 제시되는데, 시온주의자들은 대체신학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극구 부인합니다. [카발리스트 유대인들이 “반유대주의” 프레임을 이용해 그들의 불의와 불법을 폭로하는 것을 막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체신학”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믿음을 떨어뜨리고 실족시키려는 시온주의 유대인들의 계략으로 만들어져 이용되는 용어이며, 유대화된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들의 계략에 말려들어 성도들을 유대화시켜서 율법에 묶이게 하고 노아하이드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날 적그리스도에게 복종하도록 유인하는 미혹에 이용됩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은 현대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이 오직 유대 민족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대체신학”이라는 용어를 무기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제시하는 또 다른 종교집단은 스스로를 유대 민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예수님께서 예언된 메시아였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를 ‘메시아닉 쥬’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신약성서에서 예수님께서 예언된 유대인 메시아라는 역사적 사실을 적어도 지적으로는 받아들인 유대인들 중 일부를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이 유대인들이 할례 받는 것을 포함해서, 모든 비유대인(이방인) 크리스찬들이 모세의 율법 전체를 지키기를 원했기 때문에, 시온주의의 대부분이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할례받은 사람들”(그리스어: peritomē)로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일부 영어 번역본에서는 “유대인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을 참조하십시오. 이들은 오늘날의 “시온주의자들”의 선구자들입니다.
야고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예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동정녀 상태의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세상에 나오신 후, 마리아가 남편 요셉과의 관계로 낳은 예수님의 동생]이며, 예루살렘이 서기 70년에 파괴되기 직전에 예루살렘에 있는 신자들의 모임의 지도자로서, 당시에는 “수천 명”에 속했던 것으로 보이는 시온주의자 “신자들”에 대해 바울에게 경고했습니다:
(행 21:17) 우리가 예루살렘에 이르매 형제들이 우리를 반갑게 받아들이니라.
(행 21:18) 그 다음 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갔는데 모든 장로들이 있더라.
(행 21:19) 그가 그들에게 문안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역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하신 일들을 낱낱이 밝히 알리매
(행 21:20) 그들이 그것을 듣고 [주]께 영광을 돌리며 그에게 이르되, 형제여, 너도 보거니와 유대인들 중에 믿는 자 수천 명이 있는데 그들은 다 율법에 열심이 있는 자들이라.
(행 21:21) 그들이 너에 대해 곧 네가 이방인들 가운데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하여서는 안 되며 또 관례대로 걸어서도 안 된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가르쳐서 모세를 저버리게 한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도다.
(행 21:22) 그런즉 어찌할까? 네가 온 것을 그 무리가 들으리니 그들이 반드시 함께 오리라.
그리고 실제로 이 시온주의자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바울을 죽이려고 애썼습니다.
(행 23:12) 날이 새매 유대인들 중의 어떤 자들이 함께 단결하고 자신을 속박하여 저주 아래 두고 자기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말하더라.
(행 23:13) 이 음모를 꾸민 자가 마흔 명이 넘더라.
(행 23:14) 그들이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이르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박하여 큰 저주 아래 두었은즉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아니하리라.
(행 23:15) 그러므로 이제 당신들은 그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좀 더 철저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총대장에게 알려 그가 내일 그를 당신들에게 데리고 내려오게 하소서.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만 하면 언제라도 그를 죽일 준비가 되었나이다, 하매
이들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시온주의를 추진하는 주요 인물들 중 일부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대부분 ‘이방인들’)과 유사하며, ‘대체신학’이라는 용어를 발전시킨 인물들입니다.
다음은 시온주의 웹사이트 중 하나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가장 간단히 말해서 대체신학은 교회가 하나님의 계획에 있는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대체신학이라는 용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교적 새롭고 생소하다. 신학자들 사이에서 더 오래되고 널리 사용되는 용어는 “대체주의(Supersessionism)”이다.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한다”.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고 교회를 하나님의 새롭고 향상된 사람들인 “새 이스라엘”로 만들었다고 가르친다. (출처)
이것이 바로 제가 허수아비 논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세를 통한 구약 율법에서조차 성경이 애초에 가르친 적이 없는 것을 반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구약성서 부분을 보면, 아브라함의 육체적 후손들 대부분이 그들의 불신과 사악함 때문에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 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를 떠난 2백만여 명의 유대인들 1세대 가운데, 실제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가족은 두 가족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너무 사악하여 광야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 대부분은 그 땅에 들어가서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을 받게 되었지만, 그들 대부분도 똑같이 사악했습니다.
(신 9:5) 네가 가서 그들의 땅을 소유하는 것은 네 의나 네 마음의 곧바름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이 민족들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주} 네 [하나님]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기 때문이니 이것은 {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로 하신 말씀을 친히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 9:6) 그러므로 너는 깨달을지니 곧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이 좋은 땅을 소유로 주시는 것은 네 의 때문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라.
(신 9:7) ¶ 네가 광야에서 {주} 네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이집트 땅을 떠나오던 날부터 너희가 이곳에 이를 때까지 너희가 늘 {주}를 거역하였으며
위에서 설명했듯이, 예수님께서 분명히 가르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까지 혈통이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당대의 유대 민족 대부분이 그들의 아비 ‘마귀[렘판의 별]’를 섬겼으며, 정작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의 성취인 예수 그리스도는 배척하고 처형시켰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의 성취를 주장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실한 신자들은 구약성경은 물론 신약성경에서도 항상 ‘남은 자들(the remnant)’이었기 때문에 ‘대체’하고 말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성경 예언의 이스라엘과 “제3성전”
저는 1980년대 초 미국 최고의 복음주의 성경학교들 중 한 곳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창세기 12장의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니’라는 구절을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내용으로 가르치는 교수나 학자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브라함과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고,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지상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민족 그룹들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대신, 시온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그들은 성경적 예언, 주로 요한계시록(성경의 마지막 책)과 구약성서 다니엘의 예언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모든 유대 민족이 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 메시아로 받아들일 것이며, 따라서 미래에 “모든 유대인들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종종 로마서 11장 26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와 같은 바울의 가르침들 중 일부를 잘못 인용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전체는, 특히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에서, 유대인인 것이 구원받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그리고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롬 9: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을 상실한 것 같지 아니하니 이는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롬 9:7) 또한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라고 해서 다 아이들은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이삭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의 예표입니다.]
그보다 두 장 뒤에서 그가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했을 때 ‘이스라엘’을 제대로 정의해야 합니다. 참된 ‘이스라엘’, 참된 ‘유대인’, 참된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브라함의 영적 씨로 거듭나 이제 영적인 ‘이스라엘’, 영적인 ‘유대인’,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사람들입니다. [마귀가 심은 불에 던져 살라질 가라지들이 함께 섞여 있고 그들은 참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으며 하나님만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에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유대인들이 예언이 성취되기 위해 마지막 때 언젠가는 구원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적 이스라엘을 [숭배하고] 지지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그와 같은 믿음은 터무니없고, 시온주의 컬트의 일부입니다.
미래에 대한 이 시온주의적 믿음은 예언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지상으로 돌아오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지어져야 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신약성경 작가들은 이미 이것이 사실이 아니며, 새 성전은 영적이며, ‘그리스도의 몸’과 모든 참된 다시 태어난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실 우리의 죄를 갚기 위해 제물 양으로 목숨을 바치심으로 인해 예루살렘 시온에서 시작된 이 성전의 ‘주춧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시온주의와 예루살렘에 새로운 물리적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반대하는 구절들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요 2:18) ¶ 이에 유대인들이 응답하며 그분께 이르되, 네가 이런 일들을 행하니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이느냐? 하매
(요 2: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을 헐라.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
(요 2:20) 이에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 걸렸거늘 네가 그것을 사흘 안에 세우겠느냐? 하더라.
(요 2:21) 그러나 그분께서는 성전인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셨더라.
(요 2:22) 그러므로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뒤에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서 자기들에게 이것을 말씀하셨음을 기억하고 성경 기록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시대에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는데, 그것은 실제로 서기 70년에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자신이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신 후에 그분의 영이 그의 영적인 “성전”인 “신자들의 몸”에 거주하시면서부터는, 그 새로운 “성전”이 그분의 “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
(엡 2: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와 외국인이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엡 2:20)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엡 2:21)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주]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엡 2:22)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
(벧전 2:4) 참으로 사람들에게는 거부당하였으나 [하나님]께는 선정 받은 돌 곧 보배로운 산 돌이신 그분께 나아와
(벧전 2:5)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
(벧전 2:6) 그런즉 성경 기록에도, 보라, 내가 선택한 보배로운 으뜸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당황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말씀이 들어 있느니라.
(벧전 2:7) 그러므로 그분께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로우시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건축자들이 거부한 그 돌이 되셨느니라. 바로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벧전 2:8) 걸림돌과 실족하게 하는 반석이 되되 순종하지 아니하여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에게 그리되었나니 그들은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하여졌느니라.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은 이제 민족이나 종교 기관 소속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선택된 민족’[새 이스라엘]이 되었고, 주춧돌인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이제 새로운 성전[새 예루살렘]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너무나 중요한 가르침이어서, 사도행전 6장과 7장에서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 물리적 예루살렘과 물리적 성전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이 진리와 새로운 언약의 시작을 위해 헌신하고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행 6:8) 스데반이 믿음과 권능이 충만하여 백성 가운데서 큰 이적들과 기적들을 행하니라.
(행 6:9) ¶ 그때에 리베르티 사람과 구레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 사람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자들의 회당이라 하는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논쟁을 벌였으나
(행 6:10) 그가 말할 때 사용하는 지혜와 영을 그들이 능히 반박하지 못하더라.
(행 6:11) 이에 그들이 사람들을 매수하매 이들이 이르되, 그가 모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니라.
(행 6:12) 또 그들이 백성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선동하며 그에게로 다가가 그를 잡아서 공회로 데려오고
(행 6: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그들이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대적하여 신성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는도다.
(행 6:14) 그가 말하기를,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관례들을 고치리라,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니라.
(행 6:15) 공회 안에 앉은 모든 사람이 똑바로 그를 바라보며 그의 얼굴이 마치 천사의 얼굴과 같음을 보았더라.
이어 스데반은 유대인들의 역사를 들려주며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거주하실 물리적 성전이 필요하시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사도행전 7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그가 그 사실을 증거하다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7:51) ¶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않은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는도다.
(행 7:52) 대언자들 중에서 너희 조상들이 핍박하지 아니한 자가 누구였느냐? 그들은 그 의로우신 분의 오심을 미리 보여 준 자들을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분을 배반하여 넘긴 자요 살인한 자가 되었나니
(행 7:53) 너희가 천사들을 통하여 제정하신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 7:54) ¶ 그들이 이것들을 듣고 마음이 상하여 그를 향해 이를 갈거늘
(행 7:55) 그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똑바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보고
(행 7:56) 이르되, 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내가 보노라, 하매
(행 7:57) 이에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자기들의 귀를 막고 한 마음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행 7:58) 도시 밖으로 그를 내던지며 돌로 치니라. 또 증인들이 자기들의 옷을 사울이라 하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니라.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그가 [하나님]을 부르며 이르되, [주] 예수님이여, 내 영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이 죄를 저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옵소서, 하더라. 이 말을 하고 그가 잠드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임당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 16:1) 내가 이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16:2) 그들이 너희를 회당들에서 내쫓을 것이요 참으로 때가 이르면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자기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리라.
(요 16:3) 그들이 너희에게 이 일들을 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요 16:33)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시온주의에 반대하고 “반유대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사람들 모두가 그때와 비슷한 잔혹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점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요?
왜 이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이 시온주의에 속을까요? 돈의 흐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시온주의를 반박하는 데 있어 그렇게 명확하다면,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속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오늘날 기업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시온주의 문제에 대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성경적, 영적 원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이 성경의 신약성경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요일 2:15)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
(요일 2:17) 세상도 그것의 정욕도 사라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토록 거하느니라.
(요일 2:18) 어린 자녀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니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 함을 너희가 들은 것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있나니 이로써 지금이 마지막 때인 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2: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분명히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나간 것은 그들이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음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요일 2:20) 그러나 너희는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알기 때문이요 또 어떤 거짓말도 진리에서 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거듭난 자는 세상을 사랑하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고 받은 성령께서 (말씀 묵상과 기도 가운데)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일 2:27) 그러나 너희가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 부음이 너희 속에 거하므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바로 그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닌즉 그것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는 그분 안에 거할지니라.
여기서 요한이 사용한 영어 ‘기름 부음(anoint)’은 그리스 원어 크리스마(chrisma)입니다. 왕들의 대관식에 사용됐고,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에서는 성전에서 봉사한 대제사장을 임명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그것은 또한 히브리어로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예수님의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의 후반부에도 사용되는 그리스어로 우리에게 크리스토스(Christos)를 주는 단어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유일한] ‘메시아’입니다.
지난 몇 년간 저에게 많은 기독교인들이 제가 잘못된 메시아의 이름(예수님)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메일을 보내서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메시아를 위해 사용해야 할 적절한 이름이라고 어딘가에서 들은 것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음, 만약 여러분이 고대의 성경 원문을 따르고 싶다면, 이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ησοῦς χ ριστός ι. 이것은 그리스어 원문에서 온 예수스 크리스토스(Iēsous Christos)로, 현대 영어 텍스트의 “예수 그리스도”로 번역됩니다. 이것 외에 사용하기로 선택한 다른 모든 [히브리어] 철자들/발음들은 성경의 원문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해석과 개인적 의견의 문제일 뿐이며, 성경의 원문에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여기서 분명히 그리스도의 영 또는 성령인 ‘거룩한 분’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진리’를 알게 되고,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누구라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회들”을 짓는 모든 “목사들”과 거대한 조직 구조들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름 부음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고(단순히 지적인 지식과는 반대로), 인간 교사/목사/사제 등만이 성경이 말하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사람들은 단지 성경을 스스로 읽을 수 있고, 하나님/성령으로부터 “진리를 알라”는 안내를 받을 수 있는데,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 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the truth)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요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며 또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요 10:3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
신약성경에서는 이 ‘아브라함의 씨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난다’, ‘성령 안에서 침례를 받는다’ 등 다른 의미로 ‘침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참고: ‘침례’ 또한 그리스어에서 온 번역이며, 영어로 번역하면 ‘잠기다’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기름 부음이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어떻게 이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할 때입니다.
돈의 흐름을 보면 알수 있다
그래서, 돈이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시온주의에 속아 넘어가는 영적인 이유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기업 기독교가 수백만 명을 고용하는 수조 달러 규모의 시장이기 때문인데, 감히 시온주의에 반대하고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잠재적으로 경력과 수입원을 잃고 기독교 공동체의 조롱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에 수행된 한 연구는 주로 시온주의 기독교인 미국의 종교가 “애플, 아마존, 구글을 포함한 미국의 상위 10개 기술 회사의 수익을 합친 것보다 많은 1조 2천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출처)
미니스트리와치(MinistryWatch)는 2020년 미국에서 가장 큰 기독교 100개 사역들을 선정했습니다. (출처)
이 100개의 사업체들에서만 총 230억 달러가 넘습니다. 23,844,696,705달러입니다.
이들 상위 5대 기독교 사업체들 중 3곳은 시온주의를 가르치는 대학들로 각 학교가 매년 1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이들 시온주의 학교를 졸업하고 매주 강단에서 시온주의 설교를 하는 기독교 ‘목회자들’은 물론이고, 뉴스, 영화, TV, 책, 교육 자료 등을 제작하는 모든 시온주의 기독교 출판사들을 보면 시온주의 선전이 미국 문화와 보수 우파 정치에 어떻게 침투해 포화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산업의 최고 지도자들은 분명히 프리메이슨들이고, 그들이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알악사 모스크를 파괴하는 데 성공해서 그곳을 매소닉 ‘유대인’ 사원[제3성전]으로 대체한다면, 모든 시온주의 기독교인들이 사탄을 섬기는 기쁨의 함성을 지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성경공부!!
이 글은 시온주의 컬트를 요약한 것입니다. 여기에 인용된 모든 성경 구절들을 직접 확인하면서 이 문제를 스스로 연구하는 시간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비슷한 마음을 가진 신자들과 함께 모여서 이 성경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서 성경이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기독교 전문 사역자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 당신이 믿어야 한다고 하는 것 말고 말입니다.
시온주의를 반박하는 바울의 말을 듣고, 성경을 연구하며 그가 한 말이 진실인지를 알아봤던 사도행전에 나온 베레아 성도들처럼 되십시오:
(행 17:11)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자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
(행 17:12) 그들 중의 많은 사람이 믿고 또 그리스 사람인 귀부인들과 남자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이 그리하더라.
(행 17:13) 그러나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레아에서 선포하는 줄을 알고 거기에도 가서 사람들을 선동하거늘
이 글을 출력해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저는 목사나 다른 전문 기독교인들처럼 시온주의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만 원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이 글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시오니스트 컬트를 반박하는 데 있어 인간 “전문가”가 아니라 성경을 권위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저 또한 포함됩니다.
성경 자체가 이 모든 시오니스트 컬트 반박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컬트를 반박하기 위해 성경의 전문가나 학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시온주의 컬트 지도자들이 성경만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도록 요구하기 위해 탐색적인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그들의 민족성과 아브라함과의 혈통적 관계만으로 모든 유대인들이 구원받는다고 주장한다면, 예수님께서 왜 그들 대부분이 사탄을 섬긴다고 말씀하셨고, 그분을 믿는 유대인들만 실제로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셨는지 물어보십시오. 그들에게 성경을 가리키며 그들의 입장을 변호해달라고 부탁하십시오. 그들 스스로를 설명해야 할 변호인석에 앉히세요.
만약 그들이 제3성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성경은 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로 구성된 성전이 영적인 것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하는지를 물어보십시오.
만약 그들이 ‘대체신학’을 꺼내면, 그들이 ‘대체되고 있다’고 믿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들이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변호하게 하고, 그들이 오늘날 그것을 정의하는 위에서 인용한 구절들을 설명하게 하십시오.
그런 후 신약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왜 이 책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이 ‘땅’도 포함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분명하게 진술하는지 설명해달라고 부탁하십시오(히브리서 11장).
무엇보다 친절하고 이해심이 있어야 그들이 당신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속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당신의 친절함과 사랑의 태도가 그들에게 진실의 문을 열어줄 수 있으며, 그것은 문자 그대로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벧전 3:15)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
(벧전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것은 그들이 너희를 가리켜 악을 행하는 자라고 비방하다가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한 행실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출처: https://healthimpactnews.com/2023/exposing-the-christian-zionism-c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