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주의 연맹(WEA)의 뿌리인 1846 복음주의 연맹은 사탄의 회당 조직 프리메이슨이 근대 기독교 종교지도자들을 배도로 끌어들인 시작이었습니다. 모든 조직화된 개신교 종교 시스템은 사탄의 회당의 통제 아래 사탄과 적그리스도 짐승에게 경배하는 최종 종교통합 지점까지 종교지도자들이 이끄는 개혁(혁명)과 대각성 부흥 운동들을 가장한 우상숭배와 사탄숭배와 배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육적 이스라엘이 원하는 대로, 제사장 아론이 그들이 원하는 신을 만들 물질을 바치라 요구하고, 그들이 바친 물질로 만들어 이것이 너희 신이라며 그들에게 제시한 금송아지(거짓 복음의 거짓 신)를 숭배한 것과 똑같습니다.
(출 32:1)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는 것을 백성이 보고는 함께 모여 아론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우리를 위해 우리 앞에 갈 신들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사람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출 32: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들과 너희 아들딸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를 빼서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출 32:3) 온 백성이 자기들의 귀에 있던 금귀고리를 빼서 아론에게로 가져오니라.
(출 32:4) 그가 그들의 손에서 그것들을 받아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새기는 도구로 그것의 모양을 내매 그들이 이르되, 오 이스라엘아, 이것들은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이니라, 하므로
(출 32:5) 아론이 그것을 보고 그것 앞에 제단을 쌓고 선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주}를 위한 명절이라, 하니라.
(출 32:6) 다음 날에 그들이 일찍 일어나 번제 헌물을 드리고 화평 헌물을 가져오며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세계 복음주의 연맹(WEA)이 설명하는 그들의 뿌리:
“복음주의 연맹, 1846-1951
WEA의 뿌리는 1846년 영국에서 복음주의 연맹이 설립되면서 시작되었으며, 1912년 세계 복음주의 연맹(영국 기구)으로 통합되었다.
1846년의 역사적 맥락은 교훈적이다. 영국의 양심은 증가하는 사회적 불평등, 특히 노동 조건과 아동 노동으로 인해 혼란을 겪었다. 영국 국교회는 스코틀랜드 붕괴와 트랙터 운동의 탈출을 경험했다. 다윈은 진화론을 발전시키고 있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에 공산주의 선언을 발표했으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모두 1848년에 혁명을 경험했다.
제2차 대각성(1791-1842)은 특히 영국 제도와 미국에서 교파와 지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독교적 교제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그 시기는 사회적으로 통합되고 강력한 기독교 교회의 영향을 전 세계에 촉구하는 시기였다.” (유잉, 12). 1843년부터 시작된 영국 집회들은 1846년 8월 19일부터 9월 2일까지 프리메이슨 홀에서 열린 런던 집회의 분수령이 되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스웨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 캐나다에서 대표들이 참석했다. 53개 “기독교인 단체들”을 대표하는 약 800~1000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13일 동안 예배, 설교, 비즈니스를 통해 만났다.” https://worldea.org/who-we-are/our-history/
진화론(다윈 사탄숭배 유대인), 공산주의(마르크스와 엥겔스 사탄숭배 유대인), 모든 혁명들(예수회/일루미나티 크립토쥬)은 사탄숭배 유대인들(사탄의 회당)이 주도했습니다. 계시록 2:9과 3:9의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닌 자들은 마음에 할례받지 않은, 또는 할례받을 사람의 마음 자체가 없는 짐승이 된, 겉으로만 유대인인 자들을 말합니다.
(계 2:9) 내가 네 행위와 환난과 궁핍을 알며 (그러나 네가 부유하도다) 또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을 아노라.
(계 3:9)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롬 2:28) 이는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니기 때문이라.
(롬 2:29)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글자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 안에 있는 마음의 할례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들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위키피디아가 설명하는 WEA의 기원: “이 단체의 기원은 1846년 영국 런던 프리메이슨들의 홀에서 52개 복음주의 교단들이 설립한 영국 단체인 복음주의 연맹에서 비롯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World_Evangelical_Alliance

복음주의 연맹 집회 장소 프리메이슨 홀, 천장에 렘판의 별과 매소닉 두 기둥, 출입구 위에 태양숭배 상징

출입구 바닥에 렘판의 별, 헥사그램, 태양 광선, 문 위에 태양, 문 양쪽에 매소닉 두 기둥

헥사그램, 렘판의 별, 태양, 매소닉 두 기둥
영국 복음주의 연맹은 찰스 스펄전 또한 복음주의 연맹의 일원이었다고 알립니다.
“1845년 창립 총회에서 약 80명의 대표들이 침례교 신자였다.
연맹의 역사에서 후에 위대한 침례교 설교자 찰스 해든 스펄전이 연맹 회원이었으며, 연맹 연례 협의회 집회에서 연설했다.
20세기에 교회들이 그 회원이 될 수 있게 되면서, 수백 개의 침례교 교회들이 가입하여 수년 동안 회원 수가 가장 많은 그룹들 중 하나였으며, 나중에는 가장 큰 그룹이 되었다.” https://www.eauk.org/church/stories/baptists-and-the-evangelical-alliance.cfm

‘찰스 스펄전의 유명한 친구들‘, 에릭 W. 헤이든, 기독교 역사 매거진 29호:
W. E. 글래드스톤
네 번의 총리
영국 총리(W. E. 글래드스톤)와 침례교의 “총리”(C. H. 스펄전)는 여러 면에서 비슷했습니다. 글래드스톤은 “그랜드 올맨(The Grand Ol’ Man)”으로 알려졌고, 스펄전은 “도지사(The Gov’nor)”로 불렸습니다. 글래드스톤에 대해 “그는 종교적이었고, 그의 종교는 그의 권력의 비밀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신에 대한 원칙, 기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글래드스톤은 이튼과 옥스퍼드에서 교육을 받고 뉴아크의 보수당 의원이 되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중요한 연설은 노예 해방을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867년 자유당의 지도자가 되었고, 1868년부터 1894년까지 네 차례 총리를 역임했습니다.
1882년 1월, 글래드스톤은 친구 스펄전의 설교를 듣기 위해 태버너클에 예약된 좌석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아들과 함께 일찍 도착하여 예배가 끝날 때까지 스퍼전과 함께 현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방문 후, 총리의 적들은 그가 반대파 예배당을 방문하는 영국 교회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그를 비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글래드스톤이 여러 차례 아침 식사나 점심 식사에 스펄전을 다우닝 스트리트로 초대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1886년, 글래드스톤과 스펄전은 아일랜드에 홈 룰을 부여하는 문제로 인해 정치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1898년, 글래드스톤이 사망했을 때 한 작가는 “젊을 때의 C. H. 스펄전과 노년 때의 W. E. 글래드스톤이 19세기의 가장 멋진 현상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했습니다. – 기독교 역사 매거진

매소닉 핸드 싸인 하는 찰스 스펄전의 유명한 친구 W. E. 글래드스톤 영국 총리
D. L. 무디
위대한 미국 부흥사
무디와 스펄전은 모두 건장하고 수염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설교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피곤해 보이다가도 설교할 때는 얼굴이 변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유머와 설득력을 잘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대학을 설립했고, 두 사람 모두 어린이들 기독교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성령에 대한 깊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67년 처음으로 영국에 도착한 무디는 태버네클로 곧장 가서 갤러리에 앉아 듣는 모든 것을 흡수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무디에게 이 성당 저 성당에 갔었냐고 물으면, “아니, 하지만 스퍼전 설교는 들었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갤러리 좌석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무디는 이슬링턴의 농업회관에서 다시 스퍼전의 설교를 듣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1872년 “천국이 그의 영혼에 임했다”와 그 후 여러 번의 설교 때 같은 태버네클 자리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설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25년 동안 스펄전의 설교를 읽은 후 무디는 “신이 스펄전을 사용할 수 있다면 나머지 우리들이라고 안 될 이유가 뭔가?”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무디의 알미니안주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칼빈주의 스펄전은 런던의 보우 로드 홀에서 무디와 생키를 위해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무디는 스펄전의 희년(1884년 50번째 생일 축하 행사)에 태버네클에서 설교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스펄전은 그 해 무디에 대해 “그는 뛰어난 사람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찾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일에 완전히 빠져 있는 동안에는 갓태어난 아기처럼, 거만함이라고는 없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 기독교 역사 매거진

전도사 드와이트 리만 무디(왼쪽)와 이라 데이비드 생키(오른쪽), 매소닉 핸드 싸인 하고 있는 이라 데이비드 생키(무디의 부흥집회 피아노 반주자)
무디 또한 프리메이슨이었다가 후에 탈퇴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오컬티스트 존 넬슨 달비(환난전휴거설 주창자)의 세대주의 영향을 받아 오순절 운동을 일으켰고, 역시 달비의 세대주의 영향을 받고 시온주의 유대인들의 재정 후원으로 출판해 신학교들에 배포된 거짓된 스코필드 관주성경 편집자 사이러스 잉거슨 스코필드의 영향을 받아 거짓된 환난전휴거설을 유행시켰습니다.
셰프스베리 경
지칠 줄 모르는 사회 개혁가
제7대 셰프스베리 백작은 19세기 가장 사랑받는 자선가이자 정치인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신해 지칠 줄 모르고 자비로운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백작”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는 외국 선교를 옹호하는 것 외에도 광산과 공장의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삶을 크게 개선했습니다.
셰프스베리 백작은 스펄전의 33년 선배였지만 두 사람은 확고한 친구였습니다. 둘 다 비판과 우울증 발작을 겪었습니다. 셰프스베리는 스펄전과의 30분간의 대화가 항상 그의 기운을 북돋웠다고 선언했습니다. 두 사람은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고 스펄전의 런던 자택과 프랑스 남부의 멘톤에서 만났습니다. 셰프스베리는 차를 마신 후 가족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머물기도 했습니다.
스펄전은 셰프스베리 백작을 “진정한 귀족이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셰프스베리 백작은 스펄전과 친한 런던 노점상들에게 봉사하는 스펄전의 장막과 관련된 선교회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셰프스베리 백작은 태버너클에서 스펄전의 50번째 생일 축하 행사를 주재했으며, 셰프스베리 백작의 80번째 생일에는 스펄전이 참석했습니다. – 기독교 역사 매거진
“오늘 우리는 시온 비전 전당의 친구들 중 한 명인 앤서니 애쉴리 쿠퍼 경(제7대 셰프스베리 백작)을 기립니다. 1801년에 태어난 애쉴리 쿠퍼 경은 어린 나이에 영국 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독실한 종교인으로서 그는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신념을 가지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1838년에는 당시 외무장관 팔머스턴 경(Lord Palmerston)을 설득하여 영국 영사를 예루살렘으로 파견하는 데 성공했고, 1839년에는 주요 정치인이 유대인들을 조상의 고향에 정착시키기 위한 최초의 제안을 담은 기사를 분기 리뷰에 게재했습니다!
1839년 후반, 애쉴리 쿠퍼 경은 “유대인들의 국가와 부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습니다. 이 선견지명 있는 사람은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농업적으로 번영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조국 권리 지원에 대해 시온 비전 전당의 친구들에서 자세히 알아보세요!” – 시온 박물관의 친구들

매소닉 핸드 싸인 하고 있는 찰스 스펄전의 유명한 친구 제7대 셰프스베리 백작 앤서니 애쉴리-쿠퍼 경
존 러스킨
저명한 미술 비평가이자 개혁가
존 러스킨은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4년 후 현대 화가 1권(궁극적으로 17년에 걸쳐 5권)을 출간하여 미술 비평가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작품인 ‘건축의 일곱 램프들’은 고딕 부흥을 장려했습니다.교육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러스킨과 스펄전은 사회적 관심사를 공유했고, 두 사람은 확고한 친구였습니다. 러스킨은 정기적으로 스펄전의 서리 가든스 뮤직 홀(Surrey Gardens Music Hall) 예배에 참석했으며, 스펄전이 아플 때는 그림 선물을 들고 그를 방문했습니다. 러스킨은 스펄전에게 현대 화가들의 전집을 선물로 주었고, 설교자는 이를 주석으로 달고 자주 인용했습니다.
수년에 걸쳐 편지와 방문이 오갔고, 메트로폴리탄 성곽이 건설될 때 러스킨은 당시 상당한 금액인 100파운드를 기부했습니다.
두 사람은 종종 신의 섭리와 주권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러스킨은 죽은 어머니의 비전으로 일부 어린이의 생명을 구한 신의 개입을 극적으로 예로 든 적이 있습니다. 스펄전은 학생들에게 강연할 때 이 일화를 사용했습니다. 스펄전은 또한 러스킨에게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지속적인 존재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 기독교 역사 매거진

매소닉 핸드 싸인 하고 있는 찰스 스펄전의 유명한 친구 존 러스킨 미술 평론가
윌리암 부스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는 스펄전처럼 10대에 개종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새로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주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부스가 스펄전이 야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두 사람의 우호적인 친분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스펄전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강연에 참석할 수 없다고 사과했습니다. 나중에 부스는 스펄전과 함께 청중을 모아달라고 요청했지만, 특이하게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부스의 방법을 “군인 놀이”라고 생각한 스펄전은 그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장군, 군인은 시간을 엄수해야 합니다!”
윌리엄 부스는 1870년대 초에 스펄전 목사의 대학을 방문했고, 스펄전은 그의 손님에게 높은 경의를 표했습니다. 또한 스펄전이 화이트채플에 있는 자신의 선교 홀에서 기념하는 “촛불 강연”을 하고, 그의 텐트에서 3, 4천 명의 사람들에게 연설할 때도 고무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강조점에도 불구하고, 스펄전은 ‘검과 삽’에서 부스의 “거룩한 활동들”을 언급하며 “런던 대중을 감동시켰다”고 칭찬했습니다. – 기독교 역사 매거진
스펄전의 매거진 ‘검과 삽’의 의미에 대해서는 ‘포식자들의 왕자‘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매소닉 핸드 싸인 하고 있는 찰스 스펄전의 유명한 친구 윌리암 부스 장군(구세군 창설자)
바빌론 큰 음녀 이 땅의 육적/물질적 인공 이스라엘 예루살렘 이세벨을 높이고, 그들의 전선 로마 가톨릭 배후에서 그들이 주도하는 종교통합 음행/간음/간통/혼음/창녀짓을 따라하며 스스로를 더럽히는 여자들에게서 분리되어 큰 환난 속에 던져 넣어지는 재앙을 벗어나는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 되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계 2: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으니 이는 네가 이세벨이라는 그 여자를 용납하기 때문이라. 그녀가 자기를 가리켜 여대언자라 하며 내 종들을 가르치고 꾀어 음행하게 하고 또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는도다.
(계 2:21)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음행을 회개할 여지를 주었으나 그녀가 회개하지 아니하였도다.
(계 2:22) 보라,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져 넣을 것이요 그녀와 함께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자기 행실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속에 던져 넣을 것이며
(계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들을 죽이리니 그리하면 모든 교회가 나는 곧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 또 내가 너희 행위에 따라 너희 각 사람에게 주리라.
(고후 6:15)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무슨 일치를 보겠느냐?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무슨 몫을 나누겠느냐?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들과 무슨 조화를 이루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고후 6:17)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여
(고후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리라. [주] 곧 [전능자]가 말하노라, 하셨느니라.
(계 14:4)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니 그들은 처녀들이니라. 이들은 [어린양]께서 가시는 대로 그분을 따라가는 자들이며 사람들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 열매가 된 자들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