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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미혹

하누카

December 26, 2025
in 미혹

2025.12.15

어둠의 축제: 하누카를 기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인 이유

그리고 하이픈으로 결합된 유대-기독교라는 신화가 복음주의적 명료성을 죽이고 있다는 점…

최근 몇 년간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선의나 문화적 민감성의 표시로 하누카를 인정하려는 열의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 충동은 보통 친절, 겸손, 또는 반유대주의에서 거리를 두고자 하는 욕구로 표현됩니다. 사실 그것은 언약, 성취, 그리스도의 배타성에 대한 더 깊은 혼란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랍비 유대교와 병행하는 신앙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문서는 이스라엘에 한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으며, 그분을 부정하는 어떤 종교 체계도 지속적인 언약적 지위를 주장할 수 없음을 선언합니다.

하누카는 신약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더 이상 쓸모 없고 불완전하다고 선언하는 성전 체계와 종교적 정체성을 기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축제를 기념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닙니다. 이는 증언의 실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 율법의 마침,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약속의 성취로 선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빛(예수 그리스도)이 온 후 기독교인들을 다시 그림자(구약 율법) 속으로 초대하는 것은 무해한 전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하누카는 미국 기독교 공간에서 점점 더 눈에 띄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해피 하누카”를 올려, 공동체 내에 있다는 4명의 유대인 모두가 환영받고 인정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퍼스트 정치인들은 매년 그렇듯 올해도 유대인 유권자들이 86%가 민주당에 투표하지 않을 것처럼 소셜 미디어에 메노라를 게시합니다. 복음주의 평론가들은 빛들의 축제를 마치 공유된 유산인 양 찬사합니다. 이러한 축하 변화는 신성한 신학적 연구나 성경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반유대주의자로 보이지 않으려는 압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이제 반유대주의 혐의가 심각한 평판 문제를 초래하는 문화적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유대교 종교 관습에 대한 공공적인 제스처는 일종의 절연 역할을 합니다. 도덕적 수용성, 문화적 정렬, 이념적 안전을 신호하는 데 사용됩니다. 기독교인들이 공개적으로 하누카를 확언할 때, 그들은 성경이나 예수님을 존중하려는 것이 아니라, 은밀한 반유대주의에 대한 의심을 미리 막으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떠받드는 태도는 우선순위의 이상한 역전을 초래했습니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하누카 축제가 기독교와 일치하는지 묻는 대신, 반드시 금지된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질문은 충실함에서 위험 관리로 옮겨갑니다. 하누카가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진리와 양립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유대인들을 사랑하니까 나를 보이콧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음주의자들은 거의 70년 동안 우리가 ‘유대-기독교 유산’을 공유한다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은 기독교와 유대교가 관습에 따라 구분되지만 언약으로 연합된 동일한 신앙의 평행한 표현으로 함께 서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 주장은 역사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사회적 목적을 위해 고안된 현대적 개념으로, 성경에서 물려받은 범주가 아닙니다.

복음주의 내에서 신유대화(Neo-Judaizing)가 증가함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유대교 전통을 기독교에 대한 영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대안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 법은 신자들이 이 거짓 종교에 대한 존중을 미덕으로 여기도록 가르칩니다. 더 나쁜 것은, 조용히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중심에서 종교 간 예절의 변두리로 옮긴다는 점입니다.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은 간단합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누카를 종교적 선(善)으로 인정하는 어떤 형태로든 참여해야 하는가? 이러한 참여가 중립적인가, 아니면 결국 우리를 하나님과, 유대교 전통들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죽으신 그분의 아들에게 불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가?

하누카는 성경적인 축제가 아닙니다

토라에서 하누카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레위기에 있는 축일 목록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세를 통해 정해진 언약 달력의 일부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 준수를 요구하지 않고, 그 준수를 권장하지 않으며,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에 구속력을 가진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누카를 성경적 축제라고 주장하는 어떤 기독교적 주장도 간단히 거짓입니다.

이 축제는 기원전 2세기에 마카비 반란과 이교도의 신성모독 이후 성전이 재봉헌된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사건들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더라도, 그것들이 하누카를 신성하게 제정한 의식으로 바꾸지는 않습니다. 명령된 축일과 이후 랍비들이 기념하는 것들의 차이는 특히 성경을 권위로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하누카가 성경 예배의 상징을 차용했다고 생각할 때 혼란이 생깁니다. 성전 메노라는 신의 지시에 의해 세워진 일곱 가지 등대로, 율법 아래 이스라엘의 예배의 일환으로 거룩한 장소에 놓였습니다. 하누카 등불인 하누키야(hanukkiah)는 아홉 개의 가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중에 생긴 의식적 목적을 수행합니다. 이것들은 같은 물체의 변형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서로 다른 영적 주장들을 나타냅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누카 등불을 성전 메노라처럼 다룰 때, 그들은 성경적 무게가 없는 전통에 무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해한 시각적 실수가 아닙니다. 이는 성경 이후 축제가 성경적 예배의 연속인 척하는 미혹입니다.

신약성서는 성전 등대의 의미를 우리에게 해석해 줍니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들어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 선언하셨습니다. “¶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8:12). 이 주장은 천막 축제 중 등잔대 점화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것으로, 신성한 빛이 더 이상 물리적 성전을 통해 매개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통해서라는 직접적인 주장입니다.

한편, 요한계시록은 성전 등대(메노라로 알려짐)의 이미지를 회중 자체에 적용합니다. 회중이 이스라엘을 대체한다는 점을 더 보여주듯,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일곱 개의 촛대들이 그리스도의 회중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요한계시록 1:20), 예수님은 “일곱 금촛대들 가운데를 걷는 분”으로 묘사됩니다(요한계시록 2:1).

[(Rv 1:20) and the mystery of the seven stars which thou sawest in my right hand, and the seven golden candlesticks. The seven stars are the messengers of the seven congregations: And the seven candlesticks which thou sawest are the seven congregations.
(계 1:20) 그리고 네가 본 내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들과 일곱 촛대들의 신비라. 일곱 별들은 일곱 회중들의 사자들이요 네가 본 일곱 촛대들은 일곱 회중들이니라.

(Rv 2:1) Unto the messenger of the congregation of Ephesus write: These things saith he that holdeth the seven stars in his right hand, and walketh in the midst of the seven golden candlesticks.
(계 2:1) 에베소 회중의 사자에게 쓰라: 오른손에 일곱 별들을 들고 일곱 금촛대들 사이를 거니시는 분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회중들에게 불성실함이 심판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셨으며, “Remember therefore from whence thou art fallen, and repent and do the first works. Or else I will come unto thee shortly, and will remove thy candlestick out of his place, except thou repent. 그러므로 네가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들을 하라. 그렇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네게 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제거하리라.“(계시록 2:5)고 선언하셨습니다. 계시록을 읽는 유대인 독자는 그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성전이 파괴된 후에 쓰여졌고,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등대를 영원히 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예루살렘의 물리적 구조물에 묶여 있었던 빛의 이미지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람들에게 묶여 있습니다. 성전의 메노라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의해 존재하며, 회중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충실할 때만 빛납니다.

성전과 그것의 메노라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미를 찾습니다. 제사장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희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미를 찾습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하누카는 그 성취를 선포하지 않습니다. 하누카는 신약성경이 끝났다고 가르치는 체계의 고수를 축하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누카를 기념하셨다는 주장

많은 신유대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누카를 기념하셨다고 주장하며 하누카 준수를 정당화하려 합니다. 이 논쟁은 보통 요한복음에서 봉헌 축일에 대한 짧은 언급에 근거합니다. 요한은 축제가 예루살렘에서 열렸고 예수님께서 그 지역에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그 축일을 지키셨거나 의식에 참여하셨다거나 종교적으로 구속력을 부여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편번호 내에 존재하는 것은 참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께서 꾸짖으셨던 전통들로 가득한 회당에 정기적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분은 성전에서 가르치면서 그 지도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분은 죄인들과 교류하시되 그들의 죄를 승인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공공 종교 공간을 정당성을 확인하는 장이 아니라 대립의 장으로 사용하신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주장의 영적 문제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하누카는 성전의 재봉헌과 신성모독 이후 제물 제도의 지속을 기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옛 건축물이 가리키는 진정한 성전이 바로 그분 자신임을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그분께서 “이 성전을 헐라. 사흘 안에 내가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고 말했을 때, 복음은 “그분께서는 성전인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셨더라.”(요한복음 2:19–21)고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예루살렘 성전이 심판과 해체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경고하셨으며, “여기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지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마태복음 24:2). 예수님을 성전 복원의 사제로 만드는 독서는 성전 시스템의 지속에서 벗어나 그분 자신의 인격 안에서 성취와 대체를 향해 일관되게 나아가는 그분의 사역의 궤적을 오해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9:11–12). 솔직히 말해, 예수님께서 성전 파괴를 명령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성전 헌당을 기념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바울이 호소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이 날, 안식일, 축일에 관한 논쟁을 다룰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후에 생긴 랍비 전통들이 아니라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의 전환기 동안 토라 준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신자들에게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에 관하여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하며, “그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니라.”(골로새서 2:16–17)고 하며 명확히 성취에 근거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계명까지도 포함해서 유대화를 반복해서 비난하며, 영적으로 구속되는 의식적 준수로 돌아가는 것은 복음 자체를 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갈라디아서 4:9–11; 갈라디아서 5:2–4). 따라서 메시아를 부정하는 것으로 정의된 종교 체계 내에서 비성경적 전통을 존중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바울을 인용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습니다.

신약성경에는 하누카를 지키라는 명령도, 사도적 예시도 없으며, 교회에 영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다루라는 지시도 없습니다. 사도들은 할례, 안식일, 음식법에 관한 논쟁에 광범위한 주의를 기울이지만, 신자들에게 봉헌 축제일이나 성경 이후 유대인 축제를 지키라고 지시한 적은 없습니다(사도행전 15:1–29). 예수님께서 하누카를 기념했다는 주장은 성경이 가르쳐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이 주일학교 문헌을 쓰기 때문에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성경 자체는 이 생각을 뒷받침하지 않으며, 그것을 의심할 만한 모든 이유를 제공합니다.

왜 이것이 사소하거나 예의 바른 일이 아닌지

기독교인들은 종종 친절함을 호소하며 하누카 참여를 옹호합니다. 그들은 인사와 상징적인 제스처를 무해한 이웃 행위로 묘사합니다. 이런 관점은 실제 문제를 회피합니다. 하누카는 단순한 사회적 관습이 아닙니다. 이 행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거짓된 신학적 주장들을 전달하는 종교적 축제입니다.

하누카를 종교적 선으로 인정하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서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체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언약적 서두가 아들과 별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전달합니다. 그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의 고백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회중은 유대인들을 포함한 이웃을 인내와 자비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불신앙을 정당화하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사랑은 거짓을 확언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거짓된 확신이 강화된 상태에서는 전도가 진행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조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고백의 문제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종교 체계를 하나님에 이르는 평행 경로로 다룰 수 없으며, 그 결과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는 셈입니다.

교회는 유대인 축제에 강력히 반대했다

초기 회중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명확한 신학적 이유로 랍비 축제들을 거부했습니다. 초기 회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유대교 종교 의식에 계속 참여하는 것이 유산의 표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을 부정하는 것임을 이해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세례받은 신자들이 회당에 참석하고, 유대인 금식을 지키며, 안식일을 지키고, 유대인 축제에 참여했기 때문에 유대화된 기독교인들을 반대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그 행동을 직접적으로 지목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정죄합니다.

“우리들 중 일부는 유대인들과 함께 금식하며 안식일을 지키고, 어떤 이들은 등불을 켜고 축제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톰, 유대화하는 기독교인에 반대하는 담론, 설교 I, §3))

크리소스톰은 이러한 행동이 기독교인들에게 용납될 수 없는 이유를 즉시 설명합니다.

“나는 유대인들의 축제들을 싫어합니다. 나는 그들의 안식일을 싫어합니다. 그들의 월삭을 싫어합니다. 그들의 희생제물을 싫어합니다. 하나님도 그것들을 미워하십니다. 한때는 존경받았지만, 이제는 경멸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한때는 신성했지만, 이제는 불경한 것입니다.”
(설교 I, §§4–5)

그의 이유는 민족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론적입니다.

“진실이 밝혀지면, 그림자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해가 떠오르면 램프가 필요하겠습니까?”
(강론 I, §5)

크리소스톰은 명확한 논리로 선을 그었습니다.

“누군가가 유대인 의식을 존경한다면, 그는 그것들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유효하다면,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시지 않은 것이 됩니다.”
(강론 I, §6)

크리소스톰에게 참여는 신념을 전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 유대인 축제를 기리는 것은 그것을 영적으로 정당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정당하게 대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의 문제입니다.

왜 하누카를 지키는 것이 복음을 훼손하는가

종교 의식은 신학적 의미를 전달합니다. 참여한다는 것은 확언입니다. 확언한다는 것은 고백입니다.

하누카는 중립적인 역사적 기념이 아닙니다. 이 축제는 그리스도와 분리된 언약 정체성을 기념하는 종교적 축제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높일 때, 심지어 말로라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한다고 해서 언약의 지위가 끊기지 않는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됩니다.

사도들은 정반대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그 동일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느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2:36)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전통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성경적 사랑은 거짓 확신을 확언하는 것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말하는 것에 포함됩니다.

회중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전통을 존중하면서 그리스도를 존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축복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을 거부하는 것이 영적으로 안전하다고 가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거짓 숭배의 안전한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땅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언약 중심지는 단 하나만 있습니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빛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한 명의 중재자만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전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빛이 그것으로부터 다시 빛나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지 않습니다; 이미 빛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성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허용되는 예배의 대상이십니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그렇게 바란다 해도, 이를 부정하는 어떤 종교 전통도 결코 ‘행복하다’고 여겨질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거부되고 정죄되어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놓일 것입니다.

출처: https://insighttoincite.substack.com/p/rehab-of-a-holiday-the-real-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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